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롤루스 대제 (문단 편집) == 외양 및 성향 == ||[[파일:Karl_der_Große_in_der_Chronik_des_Ekkehard_von_Aura.jpg|width=100%]]|| || 1112년 ~ 1114년 상상화. 독일에서 제작. || ||[[파일:Charles_Ier_le_Grand_ou_Charlemagne.jpg|width=100%]]|| || 15세기 상상화. 프랑스에서 제작.[* 생전 모습에 가장 가깝게 묘사한 편이다.] || ||[[파일:external/www.wga.hu/2empero1.jpg|width=100%]]|| || 1512년 상상화.[* 카롤루스 대제가 머리 위에 쓰고 있는 관은 [[신성 로마 제국 황제관]]이다. 다만 실제로 카롤루스 대제가 저 관을 쓴 적 없는데, 카롤루스는 8~9세기의 사람이고 저 황관은 10세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관을 쓴 모습은 상상화다.] [[알브레히트 뒤러]] 작(作) || 카롤루스 대제의 전기작가인 [[아인하르트]]가 저술한《카롤루스 대제의 생애》에 따르면 카롤루스는 "눈이 크고 눈빛은 활기를 띠고 있다. 코는 약간 길고, 머리는 금발이며, 표정은 쾌활하게 웃는 듯하다."라고 한다. 젊은 시절에는 목소리가 가늘고 높은 편이었다고 전하며, 말을 급하게 할 때에는 더듬거리기도 했다고. 대식가이며, 구운 요리를 특히 좋아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은 균형이 잘 잡힌 전사형이었다. 그는 중년에 약간 배가 나왔던 것을 빼면 평생 동안 젊은 시절의 몸매를 유지했다고 한다. 키가 매우 컸다고 전해지는데, 19세기 중반에 그의 관을 열고 신장을 재 본 결과 '''192cm'''의 [[장신]]으로 확인되었다.[* 카롤루스 대제는 늙은 나이인 72세에 죽었으므로 그가 젊었을 때엔 더 컸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매우 큰 키인데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장신이다.] 사치스러운 옷보다는 모피 상의에 푸른 망토를 걸치기를 좋아했지만 무기만은 고급 무기를 고집했다. 앞서 서술했듯이 카롤루스 대제는 구운 고기를 좋아했는데, 의사들이 건강을 위해 구운 고기 말고 삶은 고기를 먹으라고 조언해서 카롤루스 대제는 의사들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래서 유언도 "나를 그냥 내버려 두게! 당신들의 치료약 없이 죽는 것이 낫겠어!"라고 의사들의 치료를 거부하는 내용이었다. 카롤루스가 글을 쓰지 못하는 [[문맹]]이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데, 실제로 그는 죽기 직전까지도 침대 베개 밑에 서판을 놔두고 자기 전에 꼬박꼬박 연습을 하며 상당히 노력했음에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서명은 공문서에 2개의 줄을 열십자로 긋는 것이었다고.[* 지금도 [[유럽]]과 [[미국]]에서는 글을 모를 경우 X표를 치면 서명한 것으로 간주하는 관습이 있다. 그래서 서기 800년 크리스마스 때 교황이 카롤루스에게 서로마 황제의 제관을 씌워주었을 때, 동로마에서는 "글자도 못 읽는 왕 주제에"라는 식으로 비아냥대기도 하였다. 웃긴 점은 [[동로마]]에서도 [[바실리오스 1세]] 같은 문맹 황제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카롤루스와 마찬가지로 바실리오스 또한 무식한 인물이 아니며, 오히려 카롤루스와 같이 [[명군]]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Temptabat et scribere tabulasque et codicellos ad hoc in lecto sub cervicalibus circumferre solebat, ut, cum vacuum tempus esset, manum litteris effigiendis adsuesceret, sed parum successit labor praeposterus ac sero inchoatus. >그는 글을 배우기 위해 노력했고, 침대의 베개 밑에 언제나 서판을 두고 틈이 날 때마다 글자를 익히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일찍부터 시작한 게 아니라 너무 늦게 시작했기에,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카롤루스 대제의 전기 작가인 아인하르트의 기록.] 다만 [[아인하르트]]의 서술이 말하는 '''실패'''라는 게 카롤루스가 완전한 문맹이라는 것인지 "온전히(fully) 마스터하는 거에 실패했다."는 것인지가 애매한 편이라, "카롤루스는 문맹이다."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허나 이 시기 지배층이 대체로 실용적인 글쓰기에 능숙했기 때문에 카롤루스의 경우 상당히 예외적인 케이스에 속했다고 할 수 있다. 글자 에피소드와는 별개로 카롤루스는 [[라틴어]]를 유창하게[* 전기작가 아인하르트의 말에 따르면 "모국어만큼 자유롭게"] 말하고 들으며 이해할 수 있었으며, [[그리스어]]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서사시를 좋아하여 궁정 학자들에게 이를 많이 수집하게 하였고,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인《신국》이었다고 하니 무식하다고 하긴 어렵다. 또한 서체의 통일이 필요함을 느끼고 본인의 지원하에 문맹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새로운 서체를 개발하기도 했는데, 이것이 카롤링거 서체(Carolingan Minuscule)이다. 로만 하프 언셜(Roman Half Uncial)과 인술라 서체(Insular Script)의 영향을 받아 780년 만들어졌는데 개별 글자들끼리 모양을 다르게 해 문해 난이도를 낮춘 것과 전체적으로 둥글둥글하게 생긴 것이 특징이다. [[르네상스(동음이의어)#s-2|카롤링거 르네상스]] 하에 전 서유럽으로 퍼져 약 400년 동안 쓰였다. 이후 쇠퇴했으나 [[블랙 레터]]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오늘날 로마자 소문자의 기원이 되었다. [[https://en.wikipedia.org/wiki/File:Evolution_of_minuscule.svg|여기서]] 각 서체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전형적인 [[고대]] 말 ~ [[중세]] 초중반 게르만 왕국의 '''전사왕'''에 가까운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아군에게는 인자하고 관대하며 적에게도 대범하지만 일정 선을 넘어서면 잔인하고 무자비한 행동도 서슴치 않았다. [[호색한]]이기도 하여 여러 번 결혼도 하고, 자식도 많이 낳았지만 동시에 친딸들의 순결을 위해 결혼을 시키지 않는 등의 모습도 보였다. 전형적인 [[난세]]를 사는 영웅호걸의 성격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친딸들도 결혼만 안 했지 사생아는 많다고 한다.[* 유명한 일화로 딸 이마는 샤를마뉴의 비서관이자 전기작가 아인하르트와 몰래 사귀었는데 어느 날 밀회를 즐기고 나와보니 눈이 하얗게 쌓여있어 발자국이 남을까봐 이마가 아인하르트를 번쩍 들어서 행정관까지 옮겨주었다는 일화가 있다. 다만 하필 그날 밤 샤를마뉴가 잠이 안와서 서성거리다 창밖으로 이 [[공주님 안기]]를 봐버렸고 두 사람을 불러 벌을 내리려 했으나 진심어린 간청으로 사랑을 허락받았다는 이야기.] 당시 중세인 기준으로 술을 적게 마시는 편이었다고 하는데, 하루에 딱 1잔만 마셨다고 한다. 다만 당시 중세의 술잔은 거짓말 좀 보태서 세숫대야 정도였으니 현대인 기준으로는 그래도 많이 마시는 편이다. 또한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가톨릭 교회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해 지방통치체계를 구축하기도 하고 무력을 동반한 집단 강제개종도 서슴치 않았지만, 동시에 [[아바스 왕조]]와는 상당히 가까운 관계를 맺었고 동로마 제국과는 정치적 입장에서 심한 분쟁의 소지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적대시하지는 않는 등 정치적 감각도 상당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